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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 유형과 외향적 유형

기본적인 유형에 대한 설명부터 할 것이다.

이어서 개인이 주로 분화가 가장 잘 된 기능을 이용하여 적응하고 행동 방향을 정한다는 사실 때문에 나타나는 보다 특별한 유형들에 대해 묘사할 것이다. 앞의 2가지 기본적 유형을 나는 관심의 방향 혹은 리비도의 운동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서 '태도유형'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기능유형'이라고 부른다.

앞의 여러 장에서 거듭해서 강조한 바와 같이, 태도 유형은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내향적 유형의 태도는 물러서려는 태도이다. 내향적 유형은 언제나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빼앗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마치 대상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반대로, 외향적 유형은 대상과 결정적인 관계를 맺는다. 외향적 유형은 대상의 중요성을 아주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주관적인 태도를 보면 끊임없이 대상과 관련되어 있고 대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에게 대상의 가치는 결코 충분할 수 없다. 대상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높아져야 한다. 이렇듯 2가지 유형은 너무나 다르고 아주 두드러진 대조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보통사람의 눈에도 꽤 분명해 보인다.

우리 모두는 유보적이고 수수께끼 같고 또 수줍어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공개적이고 사교적이고 유쾌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다정하게 가까이 하기 쉬운 성격의 사람들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한편 외향적 유형의 사람은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거나 모든 사람들과 다툴 수 있지만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차이가 보이면 사람들이 우선 그것을 그 사람의 성격적 특성으로 여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곧 그 같은 대조가 어느 한 사람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고 유형에 따른 태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심리학적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유형의 문제라는 사실이 쉽게 드러난다는 뜻이다. 정말로, 앞의 여러 장에서 보여주었듯이, 그 대조는 근본적인 차이이다. 간혹 아주 분명할 때도 있고 흐릿할 때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성격이 두드러진 개인들을 다룰 때면 언제나 그 대조가 나타난다. 성격적  유형은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유형은 공동체 중에서 분화가 가장 잘 된 사람들만 아니라 노동자들과 농민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대조가 나타난다. 만약에 유형의 극명한 대조가 단순히 태도의 의식적 선택에 따른 문제라면, 유형의 대조가 그처럼 광범위하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태도의 의식적 선택에 따른 문제라면, 공통의 교육이나 배경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된 특별한 계급에서는 한 가지 특별한 태도가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반대로, 유형은 꽤 무작위로 분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가족 안에서도 한 아이는 내향적이고, 다른 아이는 외향적이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이 태도 유형은 무작위로 분포된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유형은 의식적 판단이나 의도의 문제가 될 수 없고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어떤 원인 때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일반적인 심리 현상으로서 유형의 대조는 어떤 생물학적 바탕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생물학적으로 고려한다면,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언제나 적응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주체와 대상의 모든 관계가 상호 영향을 통해서 상대편을 변화시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응은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각 유형이 대상을 대하는 태도는 적응의 과정이다. 자연에는 기본적으로 2가지 유형의 적응이 있으며, 각 적응 유형은 살아 있는 유기체의 지속적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한 가지 적응 유형은 높은 번식력과 개체의 약한 방어력, 단명으로 이뤄져 있다. 다른 한 가지 적응 유형은 개체에게 자기 보존의 수단을 많이 부여하는 한편으로 번신력을 낮추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 같은 생물학적 차이는 단순히 2가지 심리적 적응 방식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 적응 방식의 바탕을 이루는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이런 식으로 대략적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외향적 유형의 특별한 본성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소비하고 선전하도록 충동질하는 한편, 내향적인 사람의 성향은 외부의 온갖 요구사랑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대상에 에너지를 쏟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에너지를 보존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남자들의 2가지 계급을 '다작을 하는' 계급과 '탐닉하는' 계급으로 묘사했을 때, 그의 직관은 틀리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2가지 유형의 적응 노력이 나름의 방법으로 똑같이 잘 통하고 성공을 거두는 것과 똑같이, 유형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성공을 거둔다. 한 태도는 관계의 증식을 통해서 그 목적을 성취하고, 다른 한 태도는 관계의 독점을 통해서 그 목적을 이룬다.

아이들이 꽤 어릴 때조차도 유형적 태도를 상당히 일관되게 보인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특별한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 의미에서 말하는 생존을 위한 투쟁일 수는 없다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마저도 무의식적으로 심리적 적응의 행위를 수행한다는 식의 반대 의견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의 영향이 아이에게 특별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이 주장은 이처럼 확실한 증거의 뒷받침을 받는 한편 똑같이 확실한 사실 앞에서, 즉 같은 어머니의 아이 둘이 어릴때 정반대의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대책 없이 무너진다. 정말로 엄마의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때 조차도 아이들은 서로 다른 유형을 보일 수 있다. 나도 부모의 영향력이 지니는 엄청난 중요성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하게 접하는 이 같은 경험 때문에 나는 유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은 아이의 기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종국적으로 아이가 외부 조건들의 항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에 속할 것인지 저 유형에 속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개인의 기질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나는 정상적인 경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조건이라면, 즉 엄마의 태도가 극단적인 조건이라면, 엄마와 비슷한 태도가 아이들에게 강요되어 아이들의 기질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그런 조건에서는 아이들도 외부의 비정상적인 환경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기질과 다른 유형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대체로, 부모의 영향에 따라서 그런 식으로 유형의 왜곡이 일어날 때마다, 그 아이는 훗날 신경증을 일으키게 되고 그러면 그의 본성과 일치하는 태도를 개발함으로써만 치료가 가능해진다.

개인의 기질에 관해서라면, 나로서는 이런저런 식으로 적응하는 능력이 특별히 더 크더나 적응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밖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아마도 아직 그 실상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생리적 원인들이 이 개인적 기질의 차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유형을 거꾸로 바꿔놓으면 심한 육체적 고갈이 일어나는 등 그 유기체의 생리적 행복이 크게 깨어진다는 경험에 비춰볼 때, 이같은 짐작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